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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앓고 있는 가족과의 대화(정현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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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16-08-02 |
조회 | 46967 | ||
치매를 앓고 있는 가족과의 대화
정현강 교수(고려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3년째 제 외래를 찾고 있는 노부부가 있습니다. 부부는 부인이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기 시작하면서 제 외래를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외래에서 뵙는 환자의 남편의 모습은 자상해 보였습니다. 부인의 증상에 대한 안타까워하였고, 앞으로 병이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염려와 걱정도 많았습니다.
환자의 남편은 젊어서 일에 쫓겨 집안일과 아이들에 대해 소홀했던 것에 대한 후회가 많았고, 잠깐이었지만 젊은 시절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팔았던 것에 대한 죄책감도 깊었습니다. 환자는 평소 온순한 성격이었는데, 치매가 시작되면서 이전과 다르게 과민하고 짜증스러워 하며 불만도 직설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특히, 환자는 남편이 자신에게 생활비를 충분히 주지 않고 돈 쓰는 것에 대한 간섭이 많다며 불평을 늘어놓곤 했습니다. 환자의 남편은 부인이 현금으로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돈을 달라고 해서 300만원을 찾아다가 줬지만 환자의 부인은 이틀 만에 돈을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고, 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린 채 다시금 남편에게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남편은 결국 환자에게 며칠 전에 300만원이나 현금으로 찾아서 갖다 줬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화를 냈고 이는 곧 환자와 남편 사이의 다툼으로 번졌습니다.
두분 사이에 이런 일은 점차 빈번해졌습니다. 환자의 남편도 식욕 부진으로 얼굴은 야위어 갔고 밤에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습니다. 결국, 환자의 남편 역시 저에게 우울증으로 함께 치료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최근에 외래를 찾는 환자와 환자의 남편 모두 이전에 비해 편안해 보입니다. 환자의 남편은 “내가 이전보다는 많이 적응을 했고 노력도 많이 하고 있지요. 또, 요령도 많이 생겼어요.”라는 이야기를 직접 하십니다. 외래에 함께 내원한 환자는 지금도 가끔씩 남편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지만, 환자의 남편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그랬었구만, 내가 앞으로 잘 할께.”라고 말씀을 하시며 그냥 미소를 지으시고, 그런 남편을 보고 환자도 웃습니다.
치매를 앓고 있는 가족을 돌본다는 것은 단순히 환자가 하지 못하는 것을 옆에서 대신 해준다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수십 년간 한 가족으로 생활하면서 익숙하게 주고 받던 대화나 행동을 바탕으로 한 상호작용의 변화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알츠하이머 치매의 경우에는 아주 오래 전 일에 대해서는 선명하게 기억을 하지만, 최근 일에 대해서 기억이 흐릿해 지는 것으로 증상 발현이 시작됩니다. 환자가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직면시키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내용에 대한 시시비비를 논하는 것은 오히려 환자를 위축시키거나 대화를 다툼으로 번지게 할 수 있습니다.
치매 환자가 불만스러운 부분 혹은 불편한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경우에는 사건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따져보기 이전에 환자가 현재 이야기하는 감정 상태에 집중하여 그 감정에 대해서 공감해주고 지지해주는 방식으로 대화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면, 환자가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죽은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환자에게 어머니는 이미 오래 전에 돌아가셨고, 부르는 소리는 실제일 수 없다는 것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좋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보다는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운 마음에서 비롯된 표현은 아닐까 생각해 보고, 혹시 어머니가 많이 보고 싶은지 여쭤도 보고, 어머니와의 옛 추억에 대한 대화를 유도해 보는 것이 더 좋을 것입니다.
치매를 앓는 가족과의 대화에서는 환자의 왜곡된 기억을 바로 잡아주는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환자가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을 좇아가며 환자와 공감하고 이해를 표현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 환자를 돌보는 많은 가족들이 우울증을 겪을 수 있는데, 이 때는 전문가에게 상담을 받고 필요하면 함께 치료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치매 환자와 환자를 돌보는 가족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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